레온 (니카라과)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레온은 니카라과의 도시로, 1524년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에 의해 세워졌다. 이 도시는 1610년 화산 폭발로 인해 버려졌으며, 현재 유적은 레온 비에호로 알려져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레온은 식민지 시대부터 니카라과의 수도였으며, 1839년 니카라과가 중앙 아메리카 연방에서 탈퇴한 후에도 수도로 남았다. 이후 자유당과 보수당의 갈등으로 수도가 그라나다와 레온 사이를 오갔으나, 1858년 마나과가 영구적인 수도로 결정되었다. 레온은 다양한 역사적 건축물과 유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레온 대성당과 카르셀 라 21 등이 대표적이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레온 (니카라과)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레온 |
공식 명칭 | 산티아고 데 로스 카바예로스 데 레온 |
별칭 | 해당 없음 |
표어 | 해당 없음 |
지리 | |
위치 | 니카라과 |
좌표 | 위도 12° 26′ 0″ N, 경도 86° 53′ 12″ W |
면적 | 820 km² |
해발 고도 | 109.21 m |
행정 구역 | |
국가 | 니카라과 |
행정 구역 1단계 | 레온 주 |
시장 | 로저 구르디안 비힐 |
인구 | |
총 인구 | 213,718 명 (2022년 추정) |
도시 인구 | 176,171 명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기타 정보 | |
시간대 | 중앙 (CST) |
UTC 오프셋 | -6 |
우편 번호 | 해당 없음 |
지역 코드 | 해당 없음 |
웹사이트 | 해당 없음 |
![]() | |
![]() |
2. 역사
wikitext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가 1524년 현재 위치에서 동쪽으로 32km 떨어진 곳에 니카라과의 첫 번째 레온시를 세웠다. 이 도시는 1610년 모모톰보 (Momotombo) 화산 폭발로 인한 지진으로 버려졌다. 그 도시의 유적은 레온 비에호로 알려져 있으며 1960년에 발굴되었고,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2][3]
새로운 도시는 스티아바(Sutiaba)라고 불린 아메리카 원주민의 마을이 있던 곳이다. 한편, 버려진 구 레온 시가는 1960년에 발굴되었으며, 2000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현재 레온에 남아있는 시가지 풍경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 양식의 훌륭한 예증이며, 1706년부터 1740년까지 지어진 레온 대성당도 포함된다. 레온 대성당에는 1746년부터 1779년에 걸쳐 두 개의 탑이 더해졌다.
레온은 식민지 시대부터 니카라과의 수도였다. 니카라과가 1839년 중앙 아메리카 연방에서 탈퇴했을 때, 레온은 새로운 국가의 수도가 되었다. 그 후 수년 동안, 자유당의 근거지인 자유주의 레온과 보수당의 근거지인 보수주의 그라나다 사이에서 천도를 반복했지만, 1858년 두 도시의 중간 지점이었던 마나과를 영구적인 수도로 하는 타협이 성립되었다.[2][3]
1950년에는 인구가 31,000명에 달했다. 1956년 9월 21일에는 니카라과 대통령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가 이 도시에서 총격을 받아 치명상을 입었다.
전통·전설 박물관 (El museo de tradiciones y leyendas) 은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까지 악명 높은 21번 감옥(XXI jail)으로 사용되었다. 도시에는 정치적인 벽화 등도 볼 수 있다.
2. 1. 초기 역사와 식민지 시대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Francisco Hernández de Córdoba)가 1524년 현재 위치에서 동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니카라과의 첫 번째 레온시를 세웠다. 이 도시는 1610년 화산 폭발로 인한 지진으로 버려졌고, 그 유적은 레온 비에호로 알려져 1960년에 발굴되었다. 모모톰보 (Momotombo) 화산이 1610년에 분화하여 심각한 피해를 입혔고, 주민들은 추가적인 분화로 인한 피해를 우려해 현재 위치로 도시를 이전했다. 2000년에 레온 비에호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새로운 도시는 스티아바(Sutiaba)라고 불린 아메리카 원주민 마을이 있던 곳이다. 현재 레온에 남아있는 시가지 풍경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 양식의 훌륭한 예증이며, 1706년부터 1740년까지 지어진 레온 대성당도 포함된다. 레온 대성당에는 1746년부터 1779년에 걸쳐 두 개의 탑이 더해졌다.
레온은 식민지 시대부터 니카라과의 수도였다.[2][3] 니카라과가 1839년 중앙 아메리카 연방에서 탈퇴했을 때, 레온은 새로운 국가의 수도가 되었다.[3] 몇 년 동안 수도는 자유당 행정부가 선호한 레온과 보수당 행정부가 선호한 그라나다 사이를 오갔으며,[2][3] 1852년에 풀헨시오 베가의 타협안으로 마나과가 영구적인 수도로 합의되었다.[2] 1858년 두 도시의 중간 지점이었던 마나과를 영구적인 수도로 하는 타협이 성립되었다.
1950년, 레온시의 인구는 31,000명이었다.[4] 1956년 9월 21일, 니카라과 대통령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는 레온에서 총격을 받아 치명상을 입었다.[4]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까지 악명 높은 21번 감옥(XXI jail)으로 사용되었던 전통·전설 박물관 (El museo de tradiciones y leyendas)과 정치적인 벽화 등도 도시에 남아있다.
2. 2. 독립과 수도 이전
니카라과의 최초의 레온시는 1524년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Francisco Hernández de Córdoba)에 의해 현재 위치에서 동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곳에 세워졌다. 이 도시는 1610년 화산 폭발로 인한 지진으로 인해 버려졌다. 그 도시의 유적은 레온 비에호로 알려져 있으며 1960년에 발굴되었고,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2][3]thumb
레온은 식민지 시대부터 니카라과의 수도였다. 1839년 니카라과가 중앙 아메리카 연합주에서 탈퇴했을 때, 레온은 새로운 국가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몇 년 동안 수도는 자유당 행정부가 선호하는 레온과 보수당 행정부가 선호하는 그라나다 사이를 오갔다. 1852년 당시 니카라과의 최고 책임자인 풀헨시오 베가가 제안한 타협안으로 마나과가 영구적인 수도로 합의되었다.[2][3]
1950년, 레온시의 인구는 31,000명이었다. 1956년 9월 21일, 니카라과 대통령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는 레온에서 총격을 받아 치명상을 입었다.[4]
2. 3. 근현대사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는 1524년 현재 위치에서 동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최초의 레온 시를 세웠다.[2] 이 도시는 1610년 화산 폭발로 인한 지진으로 인해 버려졌으며, 그 유적은 레온 비에호로 알려져 1960년에 발굴되었고,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2] 현재의 레온은 아메리카 원주민 마을인 스티아바(Sutiaba)에 세워졌다.thumb
레온은 식민지 시대부터 니카라과의 수도였다. 1839년 니카라과가 중앙 아메리카 연방에서 탈퇴했을 때 레온은 새로운 국가의 수도가 되었으나, 자유당 정부는 레온을, 보수당 정부는 그라나다를 선호하여 수도 이전이 반복되었다. 결국 1852년에 풀헨시오 베가의 제안으로 마나과가 영구적인 수도로 합의되었다.[2][3]
1950년 레온 시의 인구는 31,000명이었다.[4] 1956년 9월 21일,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 니카라과 대통령이 레온에서 총격을 받아 치명상을 입었다.[4]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까지 악명 높은 21번 감옥(XXI jail)으로 사용되었던 전통·전설 박물관 (:en:El museo de tradiciones y leyendas)과 정치적인 벽화 등을 도시에서 볼 수 있다.
3. 주요 건축물 및 유적
레온은 유서 깊은 도시로, 수많은 역사적 건축물과 유적을 자랑한다. 특히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종교 건축물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다.
- '''레온 대성당'''(Catedral de la Asunción): 1747년에서 1814년 사이에 지어진 식민지 바로크 양식 건물이다. 견고한 내진 설계 덕분에 지진, 세로 네그로 화산 폭발, 내전 중 폭격을 견뎌냈다. 1979년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 대통령에 대한 혁명, 그리고 1824년 보수 세력의 도시 포위 공격 때 지붕에 여러 대의 대포가 배치되기도 했다.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대성당이며, 1531년 이후 니카라과의 첫 번째 주교좌이자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교구 중 하나이다. 지하 묘지에는 루벤 다리오를 비롯한 여러 유명 인사들이 묻혀 있다. 다리오는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 모더니즘 시 운동을 이끌었으며, 스페인어권 문학계에서 '스페인 문학의 왕자'로 불린다. 대성당에는 살로몬 데 라 셀바, 알폰소 코르테스, 미겔 라레나야가, 호세 데 라 크루스 메나 등도 묻혀 있다. 대성당을 다른 사찰과 연결하는 터널이 여럿 있었으나, 현재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20세기 초, 시메온 페레이라 이 카스텔론 대주교는 조각가 호르헤 나바스 코르도네로에게 성모 마리아 조각상, 아틀라스 조각상 두 쌍, 열두 사도 조각상, 사자 조각상 등을 의뢰했다.
- '''카르셀 라 21'''(Cárcel la 21): 산 세바스티안 지역에 위치했던 감옥으로, 소모사 정권의 대표적인 정치범 수용 및 고문 시설이었다.[5] 1921년부터 사용되었으며,[6] 제헌주의 전쟁 이후 블랑카 아라우즈가 수감되기도 했다.[7]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 정권 시기에는 정치범과 실종된 사람들이 수용되었다.[5] 1979년 산디니스타와의 전투에서 건물의 정면이 파괴되었고, 2000년 이후 예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5][6]
- '''수티아바 교회'''(Iglesia de Sutiaba): 레온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8] 1710년에 완공되었으며, 1844년 엘살바도르와의 전쟁 중 탑 돔이 파괴되었다가 20세기 초에 재건되었다.[9]
- '''산 프란시스코 교회'''(Iglesia de San Francisco): 1639년 설립된 수도원의 일부로, 플라테레스코 양식 제단이 있다. 안뜰은 애시러 분수와 레몬 나무, 로열 야자수 등으로 꾸며져 있다.
- '''레콜레시온 교회'''(Iglesia de la Recolección): 1786년에 건설이 시작된 멕시코 바로크 양식 건물이다.
- '''라 메르세드 교회'''(Iglesia de la Merced): 1762년에 처음 지어졌으나 철거되었고, 18세기에 현재의 교회가 건설되었다. 북쪽에는 UNAN의 주요 행정 건물로 사용되는 파라니푸(구 메르세다리온 수도원)가 있다.
- '''엘 칼바리오 교회'''(Iglesia de El Calvario): 18세기 전반기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 건물로, 밝은 노란색과 흰색으로 칠해진 정면과 붉은색 종탑이 특징이다.
- '''산 세바스티안 교회 유적'''(Ruinas de la Iglesia de San Sebastián): 17세기 후반 대성당의 예배당으로 지어졌으나, 1979년 혁명 동안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 '''과달루페 교회'''(Iglesia de Guadalupe):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단순한 구조의 교회이다.
- '''사라고사 교회'''(Iglesia de Zaragoza): 19세기 후반에 건설을 시작하여 20세기 중반에 완공된 교회이다.
- '''산 펠리페 교회'''(Iglesia de San Felipe): 1685년에 지어진 대형 건물로, 1859년에 확장되었고 1983년에 탑이 복원되었다.
- '''산 페드로 은둔 교회'''(Ermita de San Pedro): 18세기에 지어진 작은 건물이다.
- '''산 니콜라스 톨렌티노 델 라보리오 교회'''(Iglesia San Nicolás Tolentino del Laborío): 1618년에 건설된 식민지 바로크 양식 건물이다.
- '''라 아순시온 예배당'''(Capilla de la Asunción): 1679년에 지어졌으며, 주교 궁전으로 사용되다가 1935년에 개조되었다.
- '''호텔 에스핀지'''는 니카라과 건축가 호세 마리아 이바라가 고급 호텔로 설계한 건물이다.
- '''에스퀴벨 하우스'''(Casa Esquivel): 19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현재 '''에스퀴벨 가문''' 소유이다.
- '''산 라몬 대학교'''(Colegio San Ramón): 1600년대부터 신학교였으며, 현재는 UNAN의 일부이다.
- '''시청'''(Casa Municipal): 1935년에 아르 데코 스타일로 지어졌으며, 1979년 혁명 때 피해를 입었다.
그 외에도 과달루페 묘지 벽, 과달루페 다리, 데바일레 박물관, 교구 기록 보관소, 메나 극장, 포사다 콜로니얼, 구 기차역, 산 비센테 병원, 수티아바 농가 등이 있다.
- '''레온 비에호'''(Ruinas de León Viejo): 1610년 모모톰보 화산 폭발로 매몰된 원래 레온의 유적이다. 1524년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현재 레온에서 30km 떨어져 있다.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창립자와 페드라리아스 다빌라 등이 묻혀 있다.
3. 1. 종교 건축물
레온에는 다음과 같은 종교 건축물들이 있다.- '''레온 대성당'''(Catedral de la Asunción)은 1747년부터 1814년 사이에 지어진 전형적인 식민지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견고한 내진 설계 덕분에 지진, 세로 네그로 화산 폭발, 내전 중 폭격을 견뎌냈다. 1824년 보수 세력의 도시 포위 공격과 1979년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 대통령에 대한 혁명 기간 동안 지붕에 여러 대의 대포가 배치되었다.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대성당이며, 1531년 이후 니카라과의 첫 번째 주교좌이자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교구 중 하나이다. 대성당 지하 묘지에는 루벤 다리오를 비롯한 여러 유명 인물들이 묻혀 있다. 다리오는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 모더니즘 시 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스페인어권 문학계에서 '스페인 문학의 왕자'로 불린다. 대성당에는 다리오 외에도 살로몬 데 라 셀바, 알폰소 코르테스, 미겔 라레나야가, 호세 데 라 크루스 메나 등 여러 유명 인사가 묻혀 있다. 20세기 초, 레온의 초대 주교이자 니카라과의 마지막 주교였던 시메온 페레이라 이 카스텔론 대주교는 조각가 호르헤 나바스 코르도네로에게 성모 마리아 조각상, 아틀라스 조각상 두 쌍, 내부의 열두 사도 조각상, 다리오 무덤의 사자 조각상 등을 의뢰했다.
- '''수티아바 교회'''(Iglesia de Sutiava)는 레온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대성당 다음으로 중요한 사찰로 간주된다. 1698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710년에 완공되었다. 1844년 엘살바도르와의 전쟁 중 탑 돔이 파괴되었지만 20세기 초에 재건되었다.
- '''산 프란시스코 교회'''(Iglesia de San Francisco)는 1639년 프리아르 페드로 데 수니가에 의해 설립된 산 프란시스코 수도원의 일부이다. 내부에는 플라테레스코 양식의 제단이 있으며, 주요 볼거리는 안뜰이다. 안뜰은 순수한 레온 식민지 스타일로 지어졌으며, 중앙에 애시러 분수가 있고, 정돈된 레몬 나무로 둘러싸인 네 개의 방사형 통로가 주변 포르티코로 이어진다.
- '''레콜레시온 교회'''(Iglesia de la Recolección)는 1786년에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멕시코 바로크 양식의 정면은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꼽힌다. 내부에는 그림과 은 조각으로 장식된 바로크 양식의 제단이 있다.
- '''라 메르세드 교회'''(Iglesia de la Merced)는 1762년 메르세데리아 신부들이 처음 지었으나 철거되었고, 18세기에 현재의 교회가 건설되었다. 건축 양식은 바로크 양식이다.
- '''엘 칼바리오 교회'''(Iglesia de El Calvario)는 18세기 전반기에 지어졌으며, 레온 바로크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정면은 옅은 노란색 바탕에 흰색 트림으로 칠해져 있으며, 중앙 본체에는 로마 아치형 문과 두 개의 작은 문이 있다. 내부는 흰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천장은 십자가, 잎, 꽃 모양의 윤곽선으로 장식되어 있다.
- '''산 세바스티안 교회 유적'''(Ruinas de la Iglesia de San Sebastián)은 17세기 후반 대성당의 예배당으로 지어졌으며, 1979년 혁명 당시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 '''과달루페 교회'''(Iglesia de Guadalupe)는 19세기 후반에 지어졌으며, 프란체스코회의 영향을 받아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 '''사라고사 교회'''(Iglesia de Zaragoza)는 19세기 후반에 건설을 시작하여 20세기 중반에 완공되었으며, 정면은 프란시스코 마테오 박사가 설계했다.
- '''산 펠리페 교회'''(Iglesia de San Felipe)는 1685년에 흑인과 물라토 예배자를 위해 지어졌으며, 1859년에 확장되었고, 1983년에 탑이 복원되었다.
- '''산 페드로 은둔 교회'''(Ermita de San Pedro)는 18세기에 지어진 작은 건물로, 전형적인 식민지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 '''산 니콜라스 톨렌티노 델 라보리오 교회'''(Iglesia de San Nicolás Tolentino del Laborío)는 1618년에 건설되었으며, 가벼운 식민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 '''라 아순시온 예배당'''(Capilla de la Asunción)은 1679년에 지어졌으며, 주교 궁전으로 사용되다가 나중에 아순시온 수녀회가 점령했다. 1935년에 대대적인 개조 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3. 2. 기타 건축물 및 유적
레온에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있다.- '''레온 대성당'''(Catedral de la Asunción): 1747년에서 1814년 사이에 지어진 식민지 바로크 양식 건물이다. 견고한 내진 설계 덕분에 지진, 세로 네그로 화산 폭발, 내전 중 폭격을 견뎌냈다. 1979년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 대통령에 대한 혁명, 그리고 1824년 보수 세력의 도시 포위 공격 때 지붕에 여러 대의 대포가 배치되기도 했다.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대성당이며, 1531년 이후 니카라과의 첫 번째 주교좌이자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교구 중 하나이다. 지하 묘지에는 루벤 다리오를 비롯한 여러 유명 인사들이 묻혀 있다. 다리오는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 모더니즘 시 운동을 이끌었으며, 스페인어권 문학계에서 '스페인 문학의 왕자'로 불린다. 대성당에는 살로몬 데 라 셀바, 알폰소 코르테스, 미겔 라레나야가, 호세 데 라 크루스 메나 등도 묻혀 있다. 대성당을 다른 사찰과 연결하는 터널이 여럿 있었으나, 현재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20세기 초, 시메온 페레이라 이 카스텔론 대주교는 조각가 호르헤 나바스 코르도네로에게 성모 마리아 조각상, 아틀라스 조각상 두 쌍, 열두 사도 조각상, 사자 조각상 등을 의뢰했다.
- '''카르셀 라 21'''(Cárcel la 21): 산 세바스티안 지역에 위치했던 감옥으로, 정치범 수용 및 고문 시설이었다.[5] 1921년부터 사용되었으며,[6] 제헌주의 전쟁 이후 블랑카 아라우즈가 수감되기도 했다.[7]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 정권 시기에는 정치범과 실종된 사람들이 수용되었다.[5] 1979년 전투에서 건물의 정면이 파괴되었고, 2000년 이후 예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5][6]
- '''수티아바 교회'''(Iglesia de Sutiaba): 레온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8] 1710년에 완공되었으며, 1844년 엘살바도르와의 전쟁 중 탑 돔이 파괴되었다가 20세기 초에 재건되었다.[9]
- '''산 프란시스코 교회'''(Iglesia de San Francisco): 1639년 설립된 수도원의 일부로, 플라테레스코 양식 제단이 있다. 안뜰은 애시러 분수와 레몬 나무, 로열 야자수 등으로 꾸며져 있다.
- '''레콜레시온 교회'''(Iglesia de la Recolección): 1786년에 건설이 시작된 멕시코 바로크 양식 건물이다.
- '''라 메르세드 교회'''(Iglesia de la Merced): 1762년에 처음 지어졌으나 철거되었고, 18세기에 현재의 교회가 건설되었다. 북쪽에는 UNAN의 주요 행정 건물로 사용되는 파라니푸(구 메르세다리온 수도원)가 있다.
- '''엘 칼바리오 교회'''(Iglesia de El Calvario): 18세기 전반기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 건물로, 밝은 노란색과 흰색으로 칠해진 정면과 붉은색 종탑이 특징이다.
- '''산 세바스티안 교회 유적'''(Ruinas de la Iglesia de San Sebastián): 17세기 후반 대성당의 예배당으로 지어졌으나, 1979년 혁명 동안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 '''과달루페 교회'''(Iglesia de Guadalupe):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단순한 구조의 교회이다.
- '''사라고사 교회'''(Iglesia de Zaragoza): 19세기 후반에 건설을 시작하여 20세기 중반에 완공된 교회이다.
- '''산 펠리페 교회'''(Iglesia de San Felipe): 1685년에 지어진 대형 건물로, 1859년에 확장되었고 1983년에 탑이 복원되었다.
- '''산 페드로 은둔 교회'''(Ermita de San Pedro): 18세기에 지어진 작은 건물이다.
- '''산 니콜라스 톨렌티노 델 라보리오 교회'''(Iglesia San Nicolás Tolentino del Laborío): 1618년에 건설된 식민지 바로크 양식 건물이다.
- '''라 아순시온 예배당'''(Capilla de la Asunción): 1679년에 지어졌으며, 주교 궁전으로 사용되다가 1935년에 개조되었다.
- '''호텔 에스핀지'''는 니카라과 건축가 호세 마리아 이바라가 고급 호텔로 설계한 건물이다.
- '''에스퀴벨 하우스'''(Casa Esquivel): 19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현재 '''에스퀴벨 가문''' 소유이다.
- '''산 라몬 대학교'''(Colegio San Ramón): 1600년대부터 신학교였으며, 현재는 UNAN의 일부이다.
- '''시청'''(Casa Municipal): 1935년에 아르 데코 스타일로 지어졌으며, 1979년 혁명 때 피해를 입었다.
그 외에도 과달루페 묘지 벽, 과달루페 다리, 데바일레 박물관, 교구 기록 보관소, 메나 극장, 포사다 콜로니얼, 구 기차역, 산 비센테 병원, 수티아바 농가 등이 있다.
- '''레온 비에호'''(Ruinas de León Viejo): 1610년 모모톰보 화산 폭발로 매몰된 원래 레온의 유적이다. 1524년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현재 레온에서 30km 떨어져 있다.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창립자와 페드라리아스 다빌라 등이 묻혀 있다.
4. 지리
레온은 니카라과의 북서부 해안 저지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중앙 고지대의 화산과 언덕을 조망할 수 있다. 연평균 기온은 27.9°C이며, 연간 누적 강수량은 1902mm이다.
레온 주변의 지질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 '''포넬로야 해변''': 태평양의 주요 관광지이다.
- '''산 하신토 스웜''': 산타 클라라 화산 기저부에 위치한 지열 지대로, 화산의 통풍구 일부를 형성한다. 이 현상은 ''열적 침식''으로 알려져 있다.
- '''모모톰보 화산''': 1300m의 정상을 가지고 있으며, 레온 지역의 경관에서 시각적인 기준이 된다. 그 기슭에는 레온 비에호가 위치해 있다. ''모모톰보''라는 이름은 "타오르는 거대한 정상"을 의미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산기슭에는 지열 발전소가 있다.
- '''세로 네그로 화산''': 세계에서 가장 젊은 화산 중 하나(1850년)인 세로 네그로는 1995년 가장 최근 발생한 것을 포함하여, 하늘을 뒤덮고 파괴적인 화산재 낙진으로 레온 시와 주변 지역에 여러 차례 큰 피해를 입혔다.
4. 1. 주변 지형
레온은 니카라과의 북서부 해안 저지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중앙 고지대의 화산과 언덕을 조망할 수 있다. 연평균 기온은 27.9°C이며, 연간 누적 강수량은 1902mm이다.레온 주변의 지질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 '''포넬로야 해변''': 태평양의 주요 관광지이다.
- '''산 하신토 스웜''': 산타 클라라 화산 기저부에 위치한 지열 지대로, 화산의 통풍구 일부를 형성한다. 이 현상은 ''열적 침식''으로 알려져 있다.
- '''모모톰보 화산''': 1300m의 정상을 가지고 있으며, 레온 지역의 경관에서 시각적인 기준이 된다. 그 기슭에는 레온 비에호가 위치해 있다. ''모모톰보''라는 이름은 "타오르는 거대한 정상"을 의미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산기슭에는 지열 발전소가 있다.
- '''세로 네그로 화산''': 세계에서 가장 젊은 화산 중 하나(1850년)인 세로 네그로는 1995년 가장 최근 발생한 것을 포함하여, 하늘을 뒤덮고 파괴적인 화산재 낙진으로 레온 시와 주변 지역에 여러 차례 큰 피해를 입혔다.
5. 유명 인물
- 호세 데 라 크루즈 메나, 클래식 작곡가 (1874–1907).
- 아사리아스 팔라이스, 시인이자 문학가 (1884–1954).
- 알폰소 코르테스, 시인 (1893–1969).
- 정글의 살로몬, 시인, 작가, 외교관, 스페인어로 월트 휘트먼 번역 (1893–1959).
- 안테노르 산디노, 형이상학 시인 (1899–1969).
-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 니카라과 대통령 (1기: 1967–1972, 2기: 1974–1979).
- 엔리케 베르무데스, 콘트라 지도자 (1932–1991).
- 호세 베난시오 베리오스 오브레곤 박사. 라스 페니타스 해변 설립자 (1960). 니카라과 레온의 정치 지도자 (1900-1979)
- 마드레 아델라 갈린도
- 호세 아레아스, 타악기 연주자, 1969–1977년 및 1987–1989년에 라틴 록 그룹 산타나에서 팀발레 연주 (1946-현재).
6. 국제 관계
레온은 여러 도시와 자매 도시 관계를 맺고 있다.[11]
도시 | 국가 |
---|---|
함부르크 | 함부르크/Hamburgde |
옥스퍼드 | 옥스퍼드/Oxford영어 |
게티즈버그 | 게티즈버그/Gettysburg, Pennsylvania영어 |
뉴헤이븐 | 뉴헤이븐/New Haven, Connecticut영어 |
미네소타 | 미네소타/Minnesota영어 |
위트레흐트 | 위트레흐트/Utrechtnl |
롤리 | 롤리/Raleigh, North Carolina영어 |
룬 | 룬/Lundsv |
알리칸테 | 알리칸테/Alicantees |
제인즈빌 | 제인즈빌/Janesville, Wisconsin영어 |
레온 | 레온/León, Guanajuatoes |
잘츠부르크 | 잘츠부르크/Salzburgde |
참조
[1]
웹사이트
Citypopulation.de
https://www.citypopu[...]
[2]
서적
Capital Cities around the World: An Encyclopedia of Geography, History, and Culture
https://books.google[...]
ABC-CLIO
2013-05-23
[3]
뉴스
Managua
http://archivo.lapre[...]
La Prensa
2017-08-18
[4]
웹사이트
Biography of Anastasio Somoza García, President of Nicaragua
https://www.thoughtc[...]
2019-09-25
[5]
뉴스
La tenebrosa cárcel la 21
http://www.laprensa.[...]
2017-09-12
[6]
뉴스
Guardián de la cultura
http://www.hoy.com.n[...]
Hoy
2017-09-12
[7]
뉴스
Blanca Aráuz: adorada esposa de Sandino
http://www.elnuevodi[...]
2017-09-12
[8]
웹사이트
Iglesia de San Juan Bautista de Sutiaba Church in León
https://www.lonelypl[...]
2019-12-18
[9]
웹사이트
Barrio Sutiava
http://www.vivatrave[...]
2019-12-18
[10]
웹사이트
León climate: Temperature León & Weather By Month
https://en.climate-d[...]
2023-09-27
[11]
웹사이트
Oxford's International Twin Towns
http://www.oxford.go[...]
2013-09-03
[12]
웹사이트
Population of departments and municipalities in Nicaragua
https://www.citypopu[...]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